희토류 공급망 전쟁과 한국의 전략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경제는 공급망 붕괴, 미중 기술전쟁, 러-우 전쟁 등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이 가운데 한 가지 자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희토류’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희토류는 스마트폰, 전기차, 반도체, 우주항공, 군사장비 등 거의 모든 첨단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원재료입니다.
희토류는 단순한 천연자원이 아닌, 국가 경쟁력과 산업 생태계를 좌우하는 전략 자원으로 부상했습니다. 특히 세계 생산과 가공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자원이 어느 나라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되느냐에 따라 미래 산업 패권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희토류 공급망 전쟁의 실체와, 그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희토류는 왜 중요한가요? – 디지털 시대의 핵심 자원
희토류는 말 그대로 희귀한 토양 속에서 얻을 수 있는 17가지 원소를 통칭합니다. 이들은 주로 스마트폰, 전기차, 풍력발전기, 반도체, 디스플레이, 군사용 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 광범위하게 쓰이며, 극소량만 사용해도 막대한 효과를 발휘하는 첨단 기술 산업의 필수 소재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 모터의 핵심 자석은 ‘네오디뮴’이라는 희토류 없이는 제조가 불가능하며, 풍력발전기의 회전에도 희토류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희토류는 사용량은 적지만, 대체 가능한 자원이 없기 때문에 그 가치는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인공지능, 반도체, 클린에너지 등 미래 산업의 핵심 분야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희토류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원의 전 세계 공급이 특정 국가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희토류의 채굴과 정제 능력은 거의 대부분 중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가공의 약 85%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는 곧 희토류를 통해 세계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자원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경제안보와 외교 전략이 결합된 사안이 되었습니다.
희토류를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 전쟁 – 자원의 무기화
중국은 오래전부터 희토류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분류하고 관리해왔습니다.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통해 세계에 경고를 보냈습니다. 이후 전 세계는 희토류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원 확보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자국 내 희토류 생산 부활을 위해 희토류 채굴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호주, 캐나다 등과 전략적 자원 협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 역시 2023년 ‘비판광물법’을 통해 희토류 확보, 재활용, 대체소재 개발 등을 법제화하며 공급망 안정성 확보에 나섰습니다.
반면 중국은 희토류 산업을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희토류법’을 새로 도입해, 희토류의 생산·가공·수출을 법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원을 ‘무기’처럼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강화하는 동시에, 외교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희토류는 단순한 광물이 아니라, 외교, 산업, 안보, 에너지 전략이 얽힌 복합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각국은 이제 단순히 자원을 수입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고, 장기적인 공급망 관리와 기술 자립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희토류 대응 전략 – 공급 다변화와 기술 독립
한국은 첨단산업 비중이 높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희토류에 대한 자급 능력이 거의 전무한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희토류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이는 곧 외교적 긴장이나 무역 분쟁 시 산업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기업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희토류 공급선 다변화
정부는 호주, 베트남, 몽골, 아프리카 국가 등과의 희토류 공동 개발 및 수입 다변화를 추진 중입니다. 특히 호주는 세계 2위의 희토류 생산국으로, 한국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한국광물자원공사는 해외 희토류 광산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국가 자원 외교를 통한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 힘쓰고 있습니다.
기술 자립과 재활용 기반 구축
한국은 희토류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 후 제품에서 희토류를 회수하는 '도심광산'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폐휴대폰, 모터, 배터리 등에서 희토류를 회수해 다시 정제·활용하는 기술은 환경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자원 순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입니다.
또한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은 고순도 희토류 정제 및 분리 기술 국산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희토류를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가공 및 활용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정부는 ‘희소금속 재활용 촉진법’ 제정을 추진하며, 충남 논산 등지에 희토류 재활용 클러스터를 조성해 산업적 자립 기반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희토류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기술 주권과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특히 반도체, 이차전지, AI 등 고도화된 산업이 집중된 우리나라로서는 희토류의 안정적인 확보가 곧 산업 경쟁력의 본질적 요소가 됩니다.
중국의 자원 독점이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 공급선 다변화와 재활용 기술 확보는 필수이며, 더 나아가 국내에서 정제 및 응용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기술 확보가 절실합니다.
앞으로 자원의 싸움은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보다는, ‘얼마나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게 확보하느냐’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러한 글로벌 희소 자원 전쟁 속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아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