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 보호법 시행 3년차, 실효성 진단과 과제
2021년 3월부터 본격 시행된 금융소비자 보호법(이하 금소법)이 어느덧 시행 3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법은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자보다, 그것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권익을 우선한다’는 방향성을 바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과거 금융업계는 주로 판매자 중심의 프레임에서 작동해 왔습니다. 투자 권유 과정에서 소비자가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하거나, 가입한 상품이 소비자의 성향과 맞지 않아 손실을 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특히 불완전판매, 과도한 수수료, 설명 부족 등은 고령자나 금융 지식이 부족한 계층에게 큰 피해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자 도입된 금소법은 금융상품 판매 전반에 ‘6대 판매원칙’(적합성·적정성·설명의무·불공정영업금지·부당권유금지·광고규제)을 적용하며, 판매자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부과했습니다. 또한, 소비자가 손해를 입었을 경우 ‘입증책임을 판매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보호 장치를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시행 3년이 지난 지금, 금융소비자 보호가 실제로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분분합니다. 오늘은 금소법의 운영 현황을 돌아보고, 실효성 측면에서의 한계와 향후 과제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소법 시행 이후 나타난 변화: 법이 시장에 남긴 신호들
금소법 시행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금융상품 판매 현장에서의 ‘문서화된 절차’의 증가입니다. 설명의무와 적합성 원칙 등을 충족하기 위해,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상품 특성, 위험성, 수수료 구조 등을 서면 혹은 영상으로 설명해야 하며, 이를 소비자가 확인하는 절차를 남겨야 합니다.
이에 따라 상품 판매 과정이 정형화되고 기록 중심으로 전환되었으며, 소비자 역시 과거보다 더 많은 정보를 사전에 제공받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특히 증권사나 보험사, 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에서는 상품 설명 동영상, 투자성향 진단서, 비교설명 자료 등을 표준화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금소법의 도입 이후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매년 수백 건의 불완전판매 사례를 적발하고, 과징금 또는 기관경고 조치를 내리고 있습니다. 법 시행 직후부터 금융상품 판매기관들이 관련 내부통제 지침을 대폭 수정하고 교육을 강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작용이나 구조적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설명을 했다’는 증빙자료는 남았지만, 소비자가 내용을 실제로 이해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판매자 중심의 ‘서류 보완’은 늘었지만, 소비자 중심의 ‘이해 확인’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설명의무가 강화되면서 판매자의 위험 회피 성향도 높아졌습니다. 일부 금융기관은 민원 발생 우려가 있는 고위험 상품 판매를 꺼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오히려 소비자의 투자 선택권이 제한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장의 현실과 제도 간의 간극: 금소법의 딜레마
금소법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제도와 시장의 실제 운용 사이의 괴리입니다. 우선, ‘설명의무’는 제도적으로 강화되었지만, 금융상품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하기에는 여전히 장벽이 존재합니다.
특히 고령자, 청년, 금융 취약계층 등은 투자성향 진단서를 작성하더라도 본인의 투자 성향에 맞는 상품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제도적 보호 장치가 현장에서 체감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파생결합증권(DLS, DLF) 사건 이후 도입된 판매제한 기준이 실제로는 투자자의 이해도를 높이지 못한 채, ‘판매사 책임 피하기’용 수단으로만 활용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또한, 판매자 입장에서 금소법은 이중 삼중의 행정적 부담을 유발합니다. 설명 내용 문서화, 체크리스트 작성, 녹취 보관, 상품비교표 제공 등 필수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절차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고객 응대 시간이 늘어나고, 창구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금소법 준수 여부’가 소비자 보호보다 내부 통제와 제재 회피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는 법의 취지와 정반대의 결과로, 오히려 금융기관이 복잡한 절차만 지키고, 고객의 진짜 이해도나 상황은 외면하는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딜레마는 소비자의 책임 회피 인식입니다. “이 상품을 권유한 사람이 있으니, 손실이 나면 금융기관이 보상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부 소비자에게 생기면서, 투자에 대한 자기결정 책임의식이 약화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금융시장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향후 과제: 진정한 ‘소비자 중심’ 금융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금소법이 단순한 형식적 규제를 넘어서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 기능을 하려면, 제도 보완과 실무 개선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 중 핵심은 단순히 ‘설명했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실제로 이해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설명자료를 보다 직관적이고 소비자 친화적인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품설명서를 ‘5분 요약서’로 요약하거나, 고위험 상품에는 ‘주의 필요’ 문구를 시각적으로 부각시키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금융상품 권유와 판매에 대한 규율도 강화해야 할 시점입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모바일 금융거래가 급증하면서, 유튜브·SNS 등을 통한 상품 추천 및 광고가 소비자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역은 아직 금소법의 실효적 규율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교육과 소비자 인식 전환입니다.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소비자가 금융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하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의 금융문해력 교육 확대, 청소년 및 고령층 대상 맞춤형 교육 콘텐츠 개발 등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판매자에 대한 정량적 성과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단순히 많이 팔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했는가, 고객과의 신뢰 관계를 잘 유지했는가 등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영업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금융소비자 보호법은 판매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금융 시스템의 균형을 옮기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멉니다. 법률 조항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장의 구조적 문제, 소비자와 판매자 간의 인식 차이, 복잡한 금융상품 설계의 한계 등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결국 소비자 보호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이해’의 문제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보호는 소비자가 금융 상품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